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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집 드라이브웨이 앞 도로에 주차하면 생기는 일

    남의 집 드라이브웨이 앞 도로에 주차하면 생기는 일

    주택가 도로에 한줄로 주차된 자동차들 틈에 주차를 하려고 보니 마침 차 한대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보였다.

    다른차가 들어가기 전에 재빨리 들어가야지 하고 분주하게 앞뒤로 차를 움직여 주차를 한 다음 여유롭게 건너편 건물로 들어가 느긋하게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시간이 꽤 흘러서 밖을 나오니 어두워 졌다.

    건물을 나와서 자동차의 리모컨 키를 눌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고, 내 차를 주차해 놓았던 장소가 텅 비어있었다.

    순간 무슨일이 벌어진게 틀림없다는 생각에 주변에 무슨 딱지라도 붙어있나 이리저리 둘러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도난당한건 아닐까? 에이! 이렇게 많은 차들중에 하필이면 내차를? 아닐거야!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일단 찾아보자.

    911에 전화를 했다.

    어느거리에서, 무슨 색깔의 어떤 차종인지 물어보더니 

    “당신의 차는 남의집 드라이브웨이를 완전히 막아서(Completely blocked) 견인 되었다”고 했다.

    관할 경찰서에 가서 Police Release Form을 받아서 그걸 가지고 견인업체 사무실로 가면 차를 내어줄 거라고 하는 것이었다.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서 면허증 제시하고 발급해준 폼을보니 견인업체의 상호만 덜렁 있고 전화번호나 주소는 적혀있지 않았다. 경찰관도 모른다고 발뺌, 오~이런! 이걸 어떻게 찾으란 말이지?

    부랴부랴 구글검색 하여 주소를 확인하고 24시간 영업한다는 견인업체를 찾아갔다.

    주변은 어두컴컴하고 잘 보이지도 않아 찾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어렵게 주소번호가 쓰여있는 입구에 도착하니 굵은 쇠사슬로 문이 잠겨있고 인기척이 없었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알 수가 없어서 또다시 어두운 길에서 구글검색으로 웹사이트를 찾고, 거기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더니 월요일 아침에 다시 오라는 대답만 들었다. 그럼 그렇지 “24시간 서비스”란 광고문구는 견인만 한다는 뜻인줄은 몰랐던 것이였다.

    지금은 토요일 저녁이라 내차를 찾으려면 적어도 이틀밤을 지내야 한다는 말인데 이사람들이 또 얼마나 바가지를 씌워서 비용을 청구할까 내심 걱정스러웠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 곰곰히 돌이켜보니 그때 한번쯤 주변을 살펴서 남의 집 드라이브웨이 앞인줄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발이 묶여 일요일을 오롯이 집돌이로 두문불출 하다가 다음날 견인 업체에 가서 건네받은 청구서에 $160 이라고 적혀있는 숫자를 보고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거의 천불 가까이 지불했다고 했는데 그정도는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견인및 보관비 지불후 차를 가지고 나오려다 보니 앞유리창 와이퍼에 하얀종이 한장이 끼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경찰에서 발부한 주차위반 딱지였다. 범칙금은 무려 $55.

    인터넷으로 범칙금을 납부하고 문득 한가지가 의문스러웠다.

    어떻게 아무런 흔적없이 차문을 열 수 있었을까? 더구나 차를 견인해서 보관할때 차 문은 잠겨져 있었다.

  •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언어가 사람을 만든다

    급식충? ‘급식충’이라는 단어를 요즘에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급식충은 ‘급식’이라는 단어에 벌레 ‘충’자를 붙인 말로 급식을 먹는 벌레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급식의 대상이 되는 중고등학생을 비하하는 단어이다.

    책을 읽으면서 공포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인가? 급식을 공짜로 먹는 것을 비하하면서 동시에 급식을 먹는 청소년들을 멸시하는 용어인 듯한데 이 두가지 사실이 왜 멸시의 대상인지 모르겠다. 무상급식은 우리나라의 정책이고 청소년들은 우리나라의 미래이다.

    청소년들은 지금은 미성숙한 사람들이지만 부모의 사랑과 나라의 지원을 받아 일정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를 짊어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 될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응원과 사랑을 보내지 않을망정 급식충이라는 단어로 비난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다. 공짜로 국가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식으로 차별하고 비하하는 것은 바르지 못한 일이다.

     ‘맘충’ 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공공장소에서 자녀를 방치하거나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엄마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는 엄마들의 진짜 속사정을 잘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말이며 또한 미숙한 아이들 및 이들의 부모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우리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오죽하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직장생활을 훌룡하게 해내던 여주인공이 결혼 및 출산 그리고 자녀양육으로 사회에서 도태되고 가정에서도 부적응하는 안타까운 내용)가 나왔을까..

     ‘틀딱’이라는 단어도 소름돗는 말이다. 노인의 신체적인 특징을 ‘틀니를 딱딱거린다’를 줄여서 부르는 단어가 아닌가? 이는 노인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단어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치아를 젊은 시절처럼 온전한 상태로 관리하기 힘들다. 치아 뿐인가? 신체적으로 점점 기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이 놀림의 대상이라니!

    흑형은 또 어떤가? 흑인 형아의 줄임말인 흑형은 운동을 잘하고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의미에서 생긴 신조어이다. 긍정적인 의미일수 있겠지만 명칭을 듣는 흑인들의 입장에서는 ‘흑형’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 단어이다. 우리가 백인들을 백형이라 안 부르고 동양인을 황형이라 안 부르듯이 사람을 색깔로 명명하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시선이며 나와 다른 인종은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의도로 지칭하는 단어인 홍어, 과메기, 감자바우같은 단어들도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나쁜 단어들의 최고봉들이다. 뿌리 깊은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그곳 출신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다양한 명칭들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퇴보하게 하는 망국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기에 우리는 언제나 이 길을 통과하여 존재자가 된다.’ 고 말했다. 그의 말에 다르면 우리의 존재는 언어를 통해 드러나게 되며 언어를 통해 존재를 입증하게 된다. 즉 언어는 우리 자신 자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언어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상태를 알수 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삐뚤어져 있으며 언젠가는 똑같은 단어로 불리우게 될수 있음을 알아야한다. 일상 생활에 공기처럼 만연한 차별의 언어를 삼가고 언어 감수성을 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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